로마서 3장 10–12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요한계시록 5장 6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잘 해주고.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공격한다. 왜그럴까?
어떻게 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게 될까?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아주기를 원하는가? 나는 남이 어떻게 보아주기를 원하는가?
좋게 봐주면 좋다. 그런데 문제는 심각하다. 인간들은 정말 약점투성이라는 것이다.
정말 너를 좋게 봐주고 싶은데 너는 믿을만하고 센스가 있고, 매력이 있다고 봐주고 싶은데, |너도 나도 엉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도덕 점수로 재고,
성숙도를 채점하고, “저 사람은 이런 타입이야” 하고 정리해 버린다.
하지만 채점하는 나는 멀쩡한가? 누가 누구를 채점하나?
채점은 쉬운 게 아니다. 속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일부러 말하지 않은 선택,
갈등을 키우지 않기 위해 삼킨 말,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스스로 낮춘 태도.
특히 많은 여자들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감정 노동을 일상적으로 지불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권리, 오해받아도 버텨온 시간, 말하지 않은 사정들.
“결과 말고, 내가 관계를 위해 쓴 에너지도 알아봐 줬으면…”
하지만 세상은 그걸 보지 않는다. 내면은 무시되고 겉만 본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 사람도 나처럼 부족한 상태로 불쌍하게 오늘을 버티고 있겠구나.”
내가 상대방을 채점하지 않으면 상대방도 채점하지 않는다.
그 시선 하나만 있어도 관계는 훨씬 덜 부서진다.
예수님도 아신다 사람들의 죄성을.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도 왕을 삼으려는 사람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 왕대접에서 십자가의 배신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공동 전제 로마서 3장 10–12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지구인들이 모두 지옥으로 모두 몰려가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없다.
인간들은 본성이 악하다. 본성이 이끄는대로 살면, 일본은 전쟁역사이고,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인간사냥을 했다.
넘쳐나는 죄악으로 대홍수로 멸망을 당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차려서 소돔과 고모라의 대심판이 있었다.
또한 바벨탑의 언어혼란 징벌이 있었다. 이후에도 세상사람들은 전쟁과 죄악으로 역사는 진행되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채점하고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지옥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죽으셨다.
“너희들이 엉망이라는 거 다 안다. 이기적인 것도, 비겁한 것도 안다. 그래도 내가 대신 감당할게. 넌 그냥 내 손만 잡아.”
모든 사람들은 살아온 과거가 영혼으로 느껴진다.
당시 23세 나는 어리석었고 나름 착하다고 생각했으나 이기적이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이대로 내가 지옥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돌아가셨다.
영혼에는 그 사람의 모든 과거가 새겨진다.
내가 성령을 받고 군대에서 영혼의 눈으로 예수님의 영혼을 느끼니, 과거에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으로 넋이 나간 상태였다.
느낌은 정확히 말타고 가던 사람이 눈 위에서 찍은 그 모습이었다.
말 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 가운데 일찍이 그냥 죽임을 당하신 흔적이 영혼에 새겨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얼어 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가? 계산? 속익분깃점? 더 이상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그냥 내가 지옥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돌아가셨다.
여기에서 어떤 무슨 계산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내가 남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그것도 악당을 위해서?
나는 그 날로 예수님을 위해서 나의 인생을 모두 포기했다.
찬양 -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https://youtu.be/l5rUOF7-OXw?list=RDl5rUOF7-OXw
찬양 - 죽임 당하신 어린양.
예수는 평가가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를 대신 감당하셨기에 우리가 서로를 덜 판단할 때 관계는 회복된다. ·
202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