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아플 때도 있고 건강할 때도 있는데 계속 아파요.
이유는 참 다양하지요. 먹어야 할 것은 안먹고, 안먹어야 할 것은 먹지요.
해야 할 운동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주로 합니다.
우리가 병이야 사라져라! 이러면서 마술을 부리면 참 좋겠지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스마트폰을 가지고도 수만가지 기능중에 전화나 문자만 쓰는 사람들 보면 참 안쓰럽잖아요?
그런데 그게 바로 우리들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우리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가 사용을 하는 방법도 모르고 하지도 않아요.
오늘은 여러분들이가지고 있는 그 능력을 한번 깨워 드리겠습니다. 아는게 힘이다.
인류에게 병이 온것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엄격한 '재판장'이십니다. 법전(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누군가는 죽어야 이 법이 지켜지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믿는 자들은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자 여기가 포인트입니다. 이게 남이야기가 아니예요.
예수님계서 돌아가신것이 나랑 무슨상관? 이게 아니라는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이사야는 여러분들의 그런 생각들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베드로전서 2:24 (영적/육적 회복의 확증)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은 병에서 나았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이것은 영혼이 소생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음을 회복되는 것만 아냐?
아닙니다. 다음 성경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가장 강력한 근거는 성경 마태복음 8장 17절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분명히 써 있지요?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도다. 이건 다른게 해석할 수 없어요.
2. 삶의 저주로부터의 자유 (갈라디아서 3:13)
"삶의 저주"라는 표현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근거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이 가난하게 사셨던 건, 우리가 겪는 경제적인 고통과 결핍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가 질병에서 고침받는 근거가 되듯이, 이 구절은 가난의 대물림이나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날 영적인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근거가 됩니다.
내가 잘 먹고 잘사는 걸 넘어, 남을 도울 수 있는 상태(부요)가 되는 게 목적.
나 혼자 사치 부리려고 돈벼락 맞는 건 성경이 말하는건 ㄴ
"일용할 양식"과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함 없는 공급.
자 이제 병을 고치는 실전입니다. 이론과 실제는 달라요. 마치 운전이나 댄스같이 처음에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주 반복하다 보면 잘하게 되지요.
1 판사가 판결문을 "피고는 무죄!"라고 입 밖으로 선포해야 감옥 문이 열리는 법.
예수님이 이미 채찍에 맞아서 값을 다 치러놨어도, 당신이 "그건 내 거야! 난 나음을 입었어!"라고 말하지 않으면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 권리가 쿨쿨...
자꾸 말하다 보면 우리의 무의식속에 "아, 내 값은 이미 치러졌지?"라는 확신이 뿌리를 내림.
2. '말'에는 창조의 에너지가 있다.
성경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셔서 내 병은 나았고, 내 인생은 회복됐다!"라고 계속 말하면, 우리의 뇌와 세포, 그리고 주변 영적 환경이 그 '믿음의 소리'에 맞춰서 재배열되기 시작.
예수님같이 바로 낫는다기 보다는, 계속 나을 때까지 기도와 찬양을 하면,
갑자기 낫기도 하고, 식단이나 영양제의 아이디어를 주시기도 하시고, 운동의 의욕을 주시기도 하시고, 치료의 방법은 매우 다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