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강신경씨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월남했으나, 그때부터 지독한 가난이 시작되었다. 연고 없는 타향에서 굶기를 밥 먹듯 했고, 당장 그날 밤 잠잘 곳조차 없는 비참한 피난민 신세였다.
극심한 가난과 절망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비바람도 막지 못하는 낡은 천막 안에서 그는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는 이 땅의 정원사가 되어라. 버려진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을 꽃처럼 가꾸어라”라는 사명을 주셨다.
학교법인 신흥학원을 세울 당시의 상황도 처참했다. 주머니엔 먼지만 가득했고 주변에선 "미친 짓"이라며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그는 안흥교회, 보육원, 농축기술학교를 차례로 세웠다. 재정난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자금이 모자라 학교 공사가 중단된 적도 수없이 많았다. 식구들과 함께 쌀 살 돈이 없어 눈물로 금식하며 매달렸던 날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72년 신흥보건전문학교(현 신한대학교)를 열었을 때도 고비는 계속되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환경은 열악했지만, “사람을 키우는 것이 나라를 세우는 길이다”라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무릎으로 기도하며 순종한 결과, 작은 전문학교는 성장하여 2014년 종합대학교인 신한대학교가 되었다. 가난이 그를 꺾으려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드셨다.
평생 10개가 넘는 학교와 교회를 세웠으나, 굶주리고 헐벗었던 청년 강신경을 들어 쓰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말을 남기고. 2019년, 그는 하나님의 품에 안겼으며, 현재 아들 강성종 총장이 그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고(故) 강신경 목사 (신한대학교 설립자)
성심당 비슷한 감동 이야기
성심당 비슷한 감동 이야기
신한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대학 연혁): 1960년 신흥학원 설립부터 2014년 종합대학 승격까지의 공식 기록.
강신경 목사 회고록 『가꾸는 정원사』: 고인이 생전에 직접 서술한 개척 당시의 고난과 신앙적 체험 기록.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역사 자료: 강신경 목사의 군종 목사 활동 및 안흥교회 개척에 관한 교단 측 기록.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연재물: 강신경 목사가 직접 연재했던 피난 시절의 가난과 학교 설립 과정의 일화.
기독교타임즈 등 종교계 부고 기사 (2019년 11월): 고인의 별세 소식과 함께 평생 일궈온 교육·선교 업적을 정리한 기사.
의정부시 향토문화대백과: 지역 사회 교육 발전에 기여한 신흥학원과 설립자 강신경에 대한 지역사 자료.